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인들이 시민생활의 중심지로 생각하던 신전과 공회당 등 공공 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이 있는 곳이다. 팔라티노 언덕 주변에는 한때 원주민들이 수장 묘지로 사용하던 늪이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에트루리아의 왕 타르퀴노 프리스코가 하수처리장을 시설하고 이 늪을 메워버리자 공회장터 역시 매몰되었는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가축 방목지로 사용되었기에 '우시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발굴작업이 괄목할 정도로 진행된 다음 이 공회장은 엄청난 신전과 공공건물, 그리고 아치형 건물과 상점이 나란히 이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사이로 서북방향으로 난 길, 비아 사크라(Via Sacra, 신성한 길이란 뜻)를 지나면 왼쪽으로 Palatino 언덕을 끼고 포로 로마노로 들어가게 된다. 

포로 로마노 입구에서 만나는 티투스 개선문. 고대 로마에는 적어도 34개의 개선문이 세워졌는데, 티투스 개선문은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다.

티투스 개선문은 서기 81년 티투스가 사망한 직후 그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한 동생 도미티아누스의 명에 따라 건설되었다. 개선문은 티투스가 거둔 가장 찬란한 승리인,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을 때 최고조에 달했던 유태인 반란을 진압한 일을 칭송하는 여러 개의 조각으로 꾸며져 있다.

베스타 신전 왼쪽에는 카이사르 제단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카이사르가 화장되었다. 그 옆에 있는 나지막한 단상에서 카이사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로마인의 단결을 호소하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들리는 것만 같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으로 들어서기 전 오른편에 보이는 붉은 벽돌의 큰 건물은 원로원(Curia)이다. 성당 부분을 복원한 원로원은 로마 공화정 시대에는 입법 자문기관으로 정치와 외교를 지도했다. 로마 공회장 유적지 안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기원전 670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마지막으로 손질을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로원 제도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정치 형태였다. 이 원로원에서 카이사르가 아들처럼 아꼈던 브루투스에게 암살되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원로원 건물 앞의 광장은 '코미티움(Comitium)'이라 하여 시민들이 모여 집정관을 선출하던 곳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Arco di Settimio Severo)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10년 통치를 치하하고, 그의 아들 카라칼라와 제타의 파르티아, 아라비아, 아시리아 등지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원로원과 시민들이 203년에 세운 것이다. 이곳에 새겨진 신들의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에 전 유럽에 전해졌다.

 

Posted by golden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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