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1907~1954)는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의 이 집에서 나서 이 집에서 죽었다. 유태계 독일인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와 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메스티조)인 어머니 '마틸데 칼데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푸른집(Casa Azul)이라 불리는 이 집은 이제 프리다 칼로를 기리는 미술관으로 거듭나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프리다 와 디에고 1929~1954 이 집에서 살았다."라고 쓰여 있다.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이다.

프리다는 6세에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 다리에 장애가 있고, 18세이던 1925년에 온몸이 부서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토록 35번 이상 수술을 받으며 살았으며, 22세 되는 1929년에 21살의 나이차이를 무릅쓰고 디에고 리베라와 운명적인 결혼을 한 후, 디에고의 무분별한 여성편력으로 이혼과 재결합을 거듭하고 1954년 이 집에서 47년의 기구한 생을 마감하였다.

프리다 칼로는 회화작품 중 1/3이 자화상이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는 경우가 많아 침대 천정에 거울을 달고 자기모습을 관찰하는 때가 많아 자신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한다.

일생동안 자화상을 그렸던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은 아이러니 하게도 수박을 그린 정물화 였다. 작품명은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라는 뜻이다.

프리다는 디에고와 더불어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여 노동자 농민운동에 매우 열렬한 활동가 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골수 스탈린주의자 여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노동자 농민이 독재에 항거한 1910년 멕시코혁명은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보다 무려 7년이나 앞서 있어, 칼로가 성장하던 시기는 혁명의 열기가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프리다 미술관 에서 멀지 않은 곳에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기념관이 있다. 노선 차이로 스탈린과의 권력다툼에서 밀린 트로츠키는 1929년 추방되어 유럽을 전전하다가 1937년 디에고 리베라의 주선으로 멕시코로 망명하였다. 이때 트로츠키는 프리다의 친정집인 '푸른집'을 거처로 제공받아 머물렀다. 

디에고의 여성편력에 분노한 프리다는 이 불굴의 혁명가에 매료되어 잠시 서로 마음을 뺐겼다고 한다. 연인 이었다는 의견과 단순한 동지애 였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이 일이 있은 후 1939년 디에고와 이혼을 하게되고 1년후 재결합한다.

트로츠키는 1940년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처참하게 살해된다.

'멕시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헤레스 섬(Isla Mujeres)  (0) 2020.04.07
칸쿤(Cancun)  (0) 2020.04.07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0) 2020.04.03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  (0) 2020.03.08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1) 2020.03.06
Posted by golden window
,